지난 몇 년간 에코프로비엠은 대한민국 주식 시장에서 가장 뜨거운 이름이었습니다.
한때 K-배터리의 미래를 책임질 대표 선수로 여겨지며 주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죠. 하지만 영광의 시간 뒤에는 혹독한 시련이 찾아왔습니다.
전기차 시장의 성장세가 주춤하고 실적이 곤두박질치면서 주가는 투자자들의 애를 태우는 롤러코스터에 올라탔습니다.
그럼에도 수많은 개인 투자자들은 하락장 속에서도 꿋꿋이 주식을 사들이며 K-배터리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습니다.
에코프로비엠은 이제 단순한 기업을 넘어 한국 첨단 산업의 기대와 불안을 한 몸에 담은 상징이 되었습니다.

이야기의 본질을 이해하려면
전기차의 심장, 바로 양극재를 알아야 합니다. 양극재는 배터리의 성능과 가격을 결정하는 가장 핵심적인 부품입니다.
한 번 충전으로 얼마나 멀리 가는지? 차값이 얼마나 비싼지가 모두 이 양극재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에코프로비엠의 주력 무기는 니켈 비중을 극도로 높인 하이니켈 양극재였습니다.
이 기술 덕분에 더 멀리 가는 고성능 전기차를 만들 수 있었고 시장을 선도하는 기술 명가로 자리 잡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니켈 함량이 높을수록 안정성과 가격 문제가 뒤따랐는데 에코프로비엠은 기술 특허 도입 등을 통해 이 약점을 보완하며 경쟁력을 키워왔습니다.
캐즘
잘나가던 에코프로비엠에게 왜 위기가 찾아왔을까요? 가장 큰 이유는 전 세계 전기차 시장이 캐즘(Chasm)이라는 깊은 계곡에 빠졌기 때문입니다.
혁신 기술에 열광하던 소수의 얼리어답터 시장을 지나, 가격과 편의성을 꼼꼼히 따지는 대중 시장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일시적인 수요 정체가 나타난 것입니다.
비싼 가격과 부족한 충전 인프라에 부담을 느낀 소비자들이 전기차 구매를 망설이기 시작한 것이죠.

여기에 설상가상으로 양극재의 원료인 리튬과 니켈 가격이 폭락하면서 비싸게 사둔 원재료로 만든 제품을 헐값에 팔아야 하는 최악의 상황까지 겹쳤습니다.
이것이 2023년부터 이어진 실적 악화의 진짜 이유입니다.
구원투수
모두가 힘겨워하던 시기 뜻밖의 곳에서 강력한 순풍이 불어왔습니다. 바로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입니다.
이 법의 핵심은 간단합니다. 미국에서 전기차 보조금을 받으려면 배터리 부품과 핵심 광물을 중국산이 아닌 곳에서 조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새로운 규칙은 사실상 가장 강력한 경쟁자인 중국을 미국 시장에서 배제하는 효과를 낳았고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한국의 배터리 기업들에게는 엄청난 기회가 되었습니다.
실제로 IRA 시행 이후 한국의 대미 양극재 수출은 폭발적으로 증가하며 지정학적 변수가 어떻게 시장의 판도를 바꾸는지를 명확히 보여주었습니다.
생존을 위한 변신
이제 배터리 전쟁은 새로운 국면을 맞았습니다.
과거에는 더 멀리 가는 성능이 중요했다면 이제는 더 저렴한 가격과 탈중국 공급망이라는 두 가지 규칙이 게임을 지배하게 된 것입니다.
에코프로비엠 역시 이 변화에 발맞춰 생존 전략을 바꾸고 있습니다.
기존의 하이니켈 기술은 더욱 갈고닦아 프리미엄 시장의 리더십을 지키는 한편 가격 경쟁력이 중요한 대중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LFP(리튬인산철)와 같은 저가형 양극재 포트폴리오를 적극적으로 확대하고 있습니다.
또한 IRA의 혜택을 극대화하기 위해 북미와 유럽에 대규모 생산 기지를 건설하며 글로벌 영토 확장에 나서고 있습니다.
무엇을 보아야 할까?
결론적으로 에코프로비엠은 원자재 가격 쇼크라는 최악의 터널은 지났지만 여전히 짙은 안갯속에 서 있습니다.
전기차 수요 둔화라는 시장 리스크, 포스코퓨처엠 등 강력한 경쟁자들과의 경쟁 리스크, 그리고 미국 대선 결과에 따라 IRA 정책이 흔들릴 수 있는 정치적 리스크는 분명 경계해야 할 안개입니다.
하지만 안개 너머에는 하이엔드 기술 리더십과 IRA가 만들어준 지정학적 보호막이라는 밝은 별이 빛나고 있습니다.

결국 에코프로비엠에 대한 투자는 이들이 기술 전문 기업을 넘어 지정학적 파도를 슬기롭게 헤쳐나가는 글로벌 플레이어로 성공적으로 변신할 수 있을지에 대한 믿음에 달려 있습니다. 그 최종 판단은 투자자 각자의 몫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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