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준비를 하다 보면 늘 마주치는 딜레마가 있습니다. 세액공제 혜택이 끝나는 은퇴 이후에도, 굳이 연금저축펀드 안에서 굴려야 할까?라는 질문이죠.
특히 주식 투자를 직접 하는 경우, 일반 위탁 계좌(주식 계좌)가 더 자유롭고 편해 보이기도 하거든요.
사실 이 고민의 시작은 투자 성향이 다른 부부의 대화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남편처럼 국내 개별 주식만 고집하는 투자자가 있다고 칩시다. 이 경우, 냉정하게 말해 연금저축펀드의 매력은 확 떨어집니다.
현재 세법상 일반 계좌에서 국내 주식을 매매할 때 매매차익에 대한 세금이 없기 때문이죠.(금투세 시행 전 기준)
그런데 굳이 이걸 연금 계좌에 넣어서 나중에 연금소득세를 낸다? 혹은 1,500만 원 초과 인출 시 16.5% 기타소득세를 맞는다? 계산기를 두드려보면 남편 말이 맞습니다.
국내장 개별 주식 위주라면 일반 계좌가 세금 측면에서는 더 유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간과하기 쉬운 복병이 하나 숨어 있습니다.
세금보다 무서운 건보료
많은 분이 소득세(15.4% vs 3.3~5.5%)의 세율 비교에만 집중하느라 놓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은퇴 후 백수가 되었을 때 맞닥뜨리게 될 지역가입자 건강보험료입니다.
은퇴 후 소득이 잡히지 않는 상황에서 일반 주식 계좌나 예금에서 발생하는 금융소득(배당, 이자 등)이 일정 수준을 넘어가면, 이것이 소득으로 잡혀 건보료 폭탄을 맞게 됩니다.
하지만 연금저축계좌에서 수령하는 연금 소득은 현재 건보료 산정 소득에 포함되지 않습니다.(사적연금 분리과세)
어떤 분들은 이것 하나만으로도 연금 계좌가 압승이다라고 표현하더군요. 단순히 몇 푼의 세금을 아끼는 차원이 아니라, 고정비 지출(건보료)을 방어하는 방패로서 연금 계좌의 가치는 생각보다 훨씬 컸습니다.
과세이연
또 하나의 포인트는 기회비용입니다. 일반 계좌에서 해외 ETF나 배당주를 투자한다고 가정해 봅시다.
이익을 실현할 때마다 혹은 배당을 받을 때마다 15.4%의 세금을 떼어갑니다. 재투자하려고 해도, 이미 세금으로 떼인 돈만큼 시드머니가 줄어든 상태에서 다시 시작해야 하죠.
하지만 연금 계좌는 안에서 사고팔고를 아무리 반복해도(일명 사팔사팔) 당장 세금을 떼지 않습니다. 이 세금 낼 돈을 원금에 엎어서 계속 굴리는 과세이연 효과는 시간이 지날수록 무시무시한 복리 차이를 만들어냅니다.
특히 해외 지수 추종 ETF처럼 장기 우상향을 믿는 자산이라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내 돈 내가 못 쓴다?
진실 연금 계좌를 꺼리는 가장 큰 이유는 급할 때 돈을 못 뺀다 혹은 한도(연 1,500만 원) 넘게 빼면 세금 폭탄 맞는다는 공포 때문입니다.
저도 이 부분이 제일 헷갈렸는데요, 공부해보니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이야기였습니다. 우리가 연금 계좌에 넣은 돈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 세액공제를 받지 않은 원금
- 세액공제를 받은 원금 + 운용 수익
여기서 1번, 즉 내가 세금 혜택 안 받고 추가로 넣은 원금은 한도 제한 없이, 세금 없이 언제든 빼 쓸 수 있습니다.
인출 순서도 이 비과세 원금부터 먼저 빠져나가게 되어 있죠. 그러니 돈이 묶인다는 걱정 때문에 연금 계좌를 포기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여유 자금을 다 넣어두고(과세이연 혜택 누리고), 필요할 때 원금부터 꺼내 쓰면 일반 계좌처럼 유동성을 확보하면서도 건보료 회피와 과세이연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셈입니다.
하이브리드 전략
논쟁을 지켜보며 내린 결론은 성향에 따른 하이브리드 전략입니다.
해외 ETF, 고배당주 투자자
무조건 연금저축펀드가 유리합니다. 과세이연 효과와 건보료 방어 효과가 압도적입니다. 1,500만 원 인출 한도 걱정보다는 일단 자산을 불리고, 나중에 연금 수령 기간을 늘리거나 부부가 나눠서 가입하는 식으로 대응하면 됩니다.

국내 개별주식 트레이더: 굳이 연금 계좌를 고집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노후 건보료 폭탄을 피하기 위한 피난처로서 일정 비중은 ETF 등으로 연금 계좌에 담아두는 것이 현명해 보입니다.
결국, 연금저축펀드는 단순한 저축 수단이 아니라, 은퇴 후 우리를 기다리는 각종 세금과 비용으로부터 자산을 지키는 방어 기지라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