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90대 친척 어르신이 병원을 옮기셨다는 소식에 어머니를 모시고 병문안을 다녀왔습니다.
사실 요양병원(노인전문병원) 병실은 처음 들어가 본 것이었는데, 그날 제가 마주한 풍경은 적잖은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낯설고 무거운 공기, 그곳의 시간 6인실 병동 안에는 70대, 80대 어르신들이 누워 계셨습니다. 말기 암 환자 한 분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뇌경색 진단을 받은 분들이라고 했습니다.
저를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그분들의 표정이었습니다. 초점 없는 눈동자로 허공을 응시하거나 멍한 표정으로 누워 계시는 모습에서 어떤 희망이나 감정의 기복도 읽기 어려웠습니다.
마치 모두가 멀지 않은 마지막을 그저 기다리고 있는 듯한 느낌
나이가 들고 병들면 인간이 이토록 처참한 모습으로 생명을 유지할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복잡해졌습니다.
가족들의 면회도 뜸한, 어쩌면 방치와 비슷한 상태라는 말은 그 무력감을 더욱 크게 만들었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시간과 현재라는 단어의 무게를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연로하신 제 어머니에게도 남은 시간이 많지 않을 수 있다는 슬픈 직감과 동시에, 언젠가 저의 미래가 될 수도 있는 모습이라는 두려움이 엄습했습니다.
매 순간을 의미 있게, 잘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더군요.
하지만 이런 충격과 다짐은 곧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힙니다. 물론 저와 비슷한 경험을 한 분들도 많았습니다.
치매이신 어머니를 모실 요양병원을 방문했다가, 그곳 어르신들의 눈동자를 보고 도저히 보내지 못하고 발길을 돌렸다는 분의 이야기는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심지어 걷지 못하는 아버지를 금요일 저녁에 요양병원에 모셨다가, 밤새 후회하고 다음 날 아침 바로 다시 모시고 나왔다는 분도 계셨죠.
그러나 모두가 집에서 모실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맞벌이 부부가 흔한 요즘, 가족이 돌보기 힘든 상태가 되었을 때 마지막으로 찾는 곳이 요양병원이라는 현실
그리고 긴 병에 효자 없다는 속담은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특히 혈당 조절을 위해 하루 세 번 인슐린 주사가 필요하거나 여러 지병으로 전문적인 재활과 관리가 필요한 경우 혹은 욕창이라도 생기면 집에서는 도저히 감당이 안 되는 게 사실입니다.
주 보호자가 대소변 문제 등으로 지쳐 쓰러지기 직전이라면, 가족 전체의 불행을 막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합니다.
요양병원에 대한 두려움이 단순히 버려진다는 감정에서만 오는 것은 아닐 겁니다.
혹시나 필요 이상의 약을 처방받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 특히 신경안정제 같은 약물로 인해 오히려 건강이 악화되거나 무기력하게 누워만 계시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가 큽니다.
하지만 모든 요양병원이 절망적인 모습만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가족의 관심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준 경험담도 있었습니다. 정신은 멀쩡하시지만 당뇨와 폐 기능 저하로 거동이 불편하신 시어머니를 치매 병동이 아닌 경증 환자 병동으로 옮겨드린 후 자녀들이 하루도 빠짐없이 돌아가며 방문하고 병원 측에 신경안정제 투약을 절대 하지 말라고 강력히 요청한 사례가 있었습니다.
그 결과 어머님은 눈에 띄게 건강을 되찾으셨다고 합니다.
비용 부담은 크지만 보호자가 함께 상주할 수 있는 1인실을 이용해 긍정적인 경험을 한 분도 있었습니다.
결국 시설의 좋고 나쁨을 떠나, 가족이 얼마나 자주 들여다보고 적극적으로 병원과 소통하느냐가 환자의 상태를 좌우하는 핵심일 수 있습니다.
요양병원에서의 짧은 경험은 결국 어떻게 살 것인가와 어떻게 죽을 것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던졌습니다. 젊고 건강할 때는 잊고 살지만 건강하게 100세까지 사는 것이 축복이지, 아픈 채로 오래 사는 것은 본인과 가족 모두에게 고통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젊었을 때 당차고 똑똑했던 분이 기저귀를 차고 아이가 되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 또한 우리가 감당해야 할 노후의 한 단면일 겁니다.

그곳에서 본 어르신들도 한때는 모두 누군가의 주축이었고 한 시대를 치열하게 살아오셨을 겁니다.
그 무거운 공기를 잊기 위해, 그리고 언젠가 다가올 나의 마지막을 위해…
지금 당장 내 곁의 부모님께 안부 전화를 드리고 스스로의 근육과 정신 건강을 챙기는 것, 그것이 제가 오늘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