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역사에는 수많은 독재자들이 등장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흔히 아는 히틀러, 스탈린, 무솔리니 같은 인물들 뒤에도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지만 그들 못지않게 강압적이고 기괴한 통치를 했던 독재자들이 있습니다.
역사 속에서 다소 잊혔지만 각기 독특한 방식으로 나라를 쥐락펴락했던 독재자들을 소개합니다.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권력이 어떻게 남용될 수 있는지 그리고 절대 권력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다시금 되새겨 봐야할 겁니다.
프란시스코 마시아스 응게마 (에콰토리얼 기니) – 신이 되고 싶었던 독재자
1968년, 아프리카의 작은 나라 에콰토리얼 기니가 독립하면서 프란시스코 마시아스 응게마가 초대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곧 자신이 신이라는 착각에 빠진 채 국민들을 공포로 몰아넣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정적은 물론 단순한 반대 의견을 가진 사람들까지도 가차 없이 처형했고 심지어 내 말에 반대하는 자는 악마다라는 논리를 앞세워 반대파를 말살했습니다.
그가 얼마나 극단적이었는지는 그의 정책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서구 문물을 악마의 산물이라며 학교와 병원을 폐쇄하고 교육을 받은 사람들을 무조건 감옥에 넣거나 처형했습니다. 국가 예산을 전부 자신의 고향으로 옮겨 국고를 텅 비게 만든 것은 물론 국민 3분의 1이 도망칠 정도로 잔혹한 독재를 펼쳤습니다.
결국 1979년, 그의 조카 테오도로 오비앙 응게마가 쿠데타를 일으켜 그를 체포했고 마시아스 응게마는 총살형으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한때 유망했던 작은 나라는 그의 광기로 인해 암흑기를 맞았고 지금도 그 후유증을 앓고 있습니다.
장베델 보카사 (중앙아프리카) – 자칭 황제, 실상은 공포의 지배자
1977년, 중앙아프리카에서는 믿기 힘든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대통령이었던 장베델 보카사가 스스로를 황제로 즉위하며 나폴레옹을 따라한 초호화 대관식을 연 것입니다.

문제는 이 행사가 국가 1년 예산을 다 쏟아부을 만큼 사치스러웠다는 것입니다. 가난한 국민들은 굶주리는데 보카사는 순금 왕좌에 앉아 다이아몬드 왕관을 쓰고 황제의 위엄을 뽐냈습니다. 하지만 이보다 더 끔찍한 건 그의 공포 정치였습니다.
보카사는 반대하는 자는 누구든 처형했고 심지어 사람을 잡아먹는 식인 독재자라는 소문까지 돌 정도로 잔혹했습니다. 그는 정적을 악어와 사자에게 던져 먹이로 주었고 일부에서는 그의 냉장고에서 사람 고기가 발견되었다는 충격적인 증언도 나왔습니다.
그의 통치는 1979년 프랑스의 지원을 받은 쿠데타로 끝났지만 그의 폭정은 중앙아프리카 공화국을 오랫동안 황폐하게 만들었습니다.
사파르무라트 니야조프 (투르크메니스탄) – 나라를 자기 장난감처럼 다룬 독재자
독재자들은 보통 공포 정치로 국민들을 억압하지만 투르크메니스탄의 사파르무라트 니야조프는 조금 달랐습니다.

그는 자신의 통치를 위해 황당한 법과 정책을 마구잡이로 시행한 독재자였습니다. 그는 나라의 달력을 바꾸어 1월을 자신의 이름으로 4월을 어머니 이름으로 정했고 국민들에게 자신의 자서전인 루흐나마를 국가의 성서처럼 읽게 강요했습니다.
또한, 수도 한복판에 항상 태양을 향해 도는 순금 동상을 세웠고 내가 금연했으니 모두 담배를 끊어라!라며 공공장소에서의 흡연을 금지하는 등 개인적인 취향을 국가 정책으로 바꿔버렸습니다.
그의 황당한 법들은 세계적인 조롱거리가 되었지만 국민들은 웃을 수 없었습니다. 반대하는 사람은 철저히 감시당하고 처벌받았으며 언론과 인터넷은 완전히 통제되었습니다.
그의 사망 후 일부 정책은 폐지되었지만 여전히 투르크메니스탄은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인 국가 중 하나로 남아 있습니다.
엔베르 호자 (알바니아) – 유럽의 북한을 만든 독재자
알바니아의 엔베르 호자는 편집증적인 고립 정책으로 나라를 철저히 봉쇄했습니다. 그는 소련, 중국 등 동맹국들과도 등을 지고 오직 자력갱생을 외쳤고 국민들을 상시 감시하며 철저한 독재를 유지했습니다.

그의 통치 아래 알바니아는 마치 거대한 요새처럼 변했습니다. 전국에 70만 개의 벙커를 건설하며 외부의 침략을 대비했지만 사실 그 벙커들은 한 번도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또한 종교를 말살하여 알바니아를 세계 최초의 무신론 국가로 만들었고 성직자들은 대부분 감옥이나 처형장을 오갔습니다.
그의 사망 후 알바니아는 점차 개방되었지만 수십 년간의 폐쇄정책은 나라를 유럽에서 가장 낙후된 국가로 만들었고 그 후유증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프랑수아 “파파 독” 뒤발리에 (아이티) – 부두교와 공포 정치의 결합
1957년, 카리브 해의 작은 나라 아이티에서 등장한 독재자 프랑수아 뒤발리에, 일명 파파 독은 부두교와 독재를 결합한 특이한 통치자였습니다.

그는 스스로를 부두교의 신 바론 삼디(죽음의 신)의 화신이라 주장하며 국민들에게 공포심을 심어 주었습니다. 그의 악명 높은 비밀경찰 통통 막투(Tonton Macoute)는 국민들을 무차별적으로 체포하고 고문했으며 심지어 반대파를 황산이 가득 찬 통에 넣어 녹여버리는 잔혹한 처형 방식을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또, 정적이 검은 개로 변신해 도망쳤다는 주술사의 말을 믿고 나라 안의 검은 개를 모조리 처형하라는 명령을 내리기도 했습니다.
그의 독재는 1971년 그가 사망하면서 끝났지만 그의 아들이 15년간 더 권력을 잡으며 아이티는 끝없는 고난을 겪어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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