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한 번쯤 직장 때려치우고 주식이나 전업으로 해볼까?라는 상상을 합니다.
하지만 상상이 현실이 되었을 때, 그것도 준비되지 않은 현실이 몇년이나 지속된다면 그 가정은 어떤 모습일까요?
이 사연에서 가장 뼈아프게 다가온 장면은 부부의 경제적 갈등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초등학생 아들의 한마디였습니다. 아빠도 일 안 하잖아. 왜 나만 (숙제) 해야 하는데? 아들의 게임 시간을 통제하려던 아빠에게 돌아온 이 말 한마디는, 현재 이 가정이 처한 위기를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아이들의 눈은 무서울 정도로 정확합니다.
아빠가 방 안에서 투자라는 명목으로 무엇을 하든, 아이의 눈에는 그저 집에서 노는 사람으로 비쳤던 것입니다. 사연 속 아내분은 남편의 권위를 세워주기 위해 공유 오피스를 얻어 출퇴근하는 시늉이라도 하게 해줄까 고민하십니다.
상담사조차 남편을 전업 투자자로 인정해주라고 조언했다더군요.
하지만 정말 장소만 바뀐다고 해서 본질이 달라질까요?
아이에게 필요한 건 양복 입고 나가는 아빠의 연기가 아니라, 땀 흘려 가치를 만들어내는 부모의 치열한 삶의 태도 그 자체일지도 모릅니다.
흔히 전업 투자를 디지털 노마드나 경제적 자유의 상징처럼 여깁니다. 하지만 냉정하게 말해, 수익으로 증명하지 못하는 투자는 그저 비싼 취미이거나 도피처일 뿐입니다.
사연의 남편분은 명문대를 나와 휴대폰 하드웨어 개발자로 일했던 소위 엘리트였습니다.
하지만 수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1~2억 남짓의 시드머니로 크게 잃지는 않았지만, 생활비도 제대로 못 대는 상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많은 투자 고수들이 입을 모아 말합니다.
상승장에서는 누구나 돈을 번다. 진짜 실력은 하락장에서 생활비를 벌어오는 것이다. 몇년이면 강산도 변하고, 미국 나스닥 지수가 몇 배로 뛰었을 시간입니다.
그 긴 시간 동안 자산의 퀀텀 점프(대약진)가 없었다면, 그리고 가족이 체감할 만한 생활비를 매달 꼬박꼬박 내놓지 못했다면, 죄송하지만 그것은 직업이 아닙니다.
직업이란, 나의 노동(혹은 자본 투입)이 타인에게 가치를 제공하고 그 대가로 생계를 유지하는 수단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남편분의 태도입니다. 아내의 등 떠밀림에 직업 박람회에 가보지만, 자존심 상해하며 시늉만 합니다.
편의점 알바나 단순 노무직은 내가 명문대 출신 엔지니어인데…라는 생각에 쳐다보지도 않을 겁니다. 이것이 바로 고학력 실업의 함정입니다.
과거의 영광과 스펙이 오히려 재취업의 발목을 잡는 족쇄가 된 셈이죠.
하지만 가족을 부양해야 할 가장에게 가장 필요한 스펙은 과거의 대학 졸업장이 아니라, 어떤 일이라도 해서 가족을 지키겠다는 절박함과 책임감입니다.
주식 차트를 분석할 머리는 있지만, 당장 내 아이 학원비를 벌기 위해 몸을 움직일 의지는 없는 상태
이것을 우리는 게으른 완벽주의 혹은 회피형 무기력이라고 부릅니다.
아내분의 생각처럼 공유 오피스를 구해주면 남편은 변할까요? 오히려 나는 출근하는 직장인(전업 투자자)이라는 달콤한 착각에 더 깊이 빠질 위험이 큽니다.
집에서는 아내의 눈치라도 봤지만, 밖으로 나가면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과 어울리며 현실 감각을 더 잃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전업 투자자라는 타이틀은 가족의 생계를 책임질 수 있을 때, 즉 근로 소득을 압도하는 자본 소득이 3년 이상 지속될 때 비로소 붙일 수 있는 훈장 같은 것입니다.
때로는 냉정해져야 합니다.
이 가정에 필요한 건 공유 오피스 임대료 지원이 아닙니다. 투명한 계좌 공개와 확실한 데드라인입니다.
진정한 파트너라면 이렇게 말해야 하지 않을까요? 당신을 존중하기에, 당신의 무능력이 아닌 가능성을 보고 싶다. 8년의 성적표(계좌)를 공개해라. 그리고 월 200만 원 이상의 수익을 6개월 연속 증명해라. 그게 아니라면 내일 당장 쿠팡 배달이라도 시작하자.

만약 남편이 주식 투자를 정말 직업으로 생각한다면, 자신의 실적(수익률)을 가족에게 브리핑하고 투자금 운용 계획을 투명하게 밝혀야 합니다.
회사에서 실적 없이 몇년을 버티는 직원은 없습니다. 가족은 감정의 공동체이기도 하지만, 현실을 함께 항해하는 경제 공동체입니다.
남편분이 과거의 타이틀을 내려놓고, 가장이라는 진짜 타이틀의 무게를 짊어지길 바랍니다.
노동의 숭고함은 연봉의 액수가 아니라, 내 가족을 위해 기꺼이 땀 흘리는 그 마음에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