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원/달러 환율을 보면 1997년 외환위기, 일명 IMF 사태가 떠오른다는 분들이 좀 있습니다.
저 역시 그 시절의 어려움을 어렴풋이 기억하는 세대로서, 1,400원을 넘어 1,500원을 향해 가는 환율 그래프를 보면 덜컥 겁이 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고개를 갸웃하게 됩니다.
그때처럼 나라가 망할 것 같다는 공포스러운 기사나 심각한 경제 방송이 예전만큼 눈에 띄지 않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시끄러운 정치 뉴스만 가득하고 경제가 안 좋고 나라 빚이 최고라는 와중에 코스피는 5천을 간다는 아이러니한 전망도 나옵니다.
가장 큰 차이점은
경제 체력과 위기의 본질입니다.
1997년의 위기는 외환보유액 부족에서 시작된 국가 신용 위기였습니다. 말 그대로 달러가 없어서 외국에서 빌린 돈을 갚지 못하게 된 상황이었죠.
외국인 자본은 썰물처럼 빠져나갔고, 기업들은 줄도산했으며, 우리는 금 모으기 운동까지 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릅니다.
외환보유고는 비교적 넉넉한 편이고, 1997년처럼 단기 외채 상환 압박에 시달리는 상황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지금의 환율 상승은 미국의 고금리로 인한 글로벌 달러 강세 현상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었습니다.
미국이 금리를 높게 유지하니 전 세계 돈이 안전자산인 달러로 몰리고, 상대적으로 다른 나라 통화 가치가 떨어지는 현상이라는 것입니다.
강달러가 아니라 원화 약세가 문제라는 시각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흥미로운 반론이 있었습니다. 최근 달러 인덱스(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 자체는 정점에서 내려와 안정화되는 추세인데, 유독 원화만 다른 통화에 비해 더 약세를 보이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즉, 강한 달러도 문제지만 약한 원화가 더 큰 문제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원화 가치가 유독 떨어지는 걸까요?
여기에는 여러 복합적인 국내 요인이 거론됩니다.
- 한미 간 금리 격차: 미국의 고금리가 유지되는 반면, 우리는 부동산 문제 등으로 금리를 쉽사리 따라 올리지 못하면서 금리 격차가 벌어진 것이 원인 중 하나로 꼽힙니다.
- 늘어난 통화량(M2)과 나라 빚: 코로나19 이후 풀린 막대한 유동성과 계속 늘어나는 나라 빚이 원화 가치를 떨어뜨리고 있다는 분석입니다. 시중에 원화가 너무 많이 풀렸다는 것이죠.
- 서학개미의 달러 수요: 바로 이 부분이 흥미로웠습니다. 저를 포함한 많은 ‘서학개미’들이 미국 주식에 투자하기 위해 끊임없이 원화를 팔고 달러를 사들이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일반인들이 달러를 이렇게까지 적극적으로 사 모으지 않았는데, 이제는 개인들의 달러 자산 선호 현상이 하나의 거대한 흐름이 되어 환율을 밀어 올리는 요인 중 하나가 되었다는 해석입니다.

환율은 오르는데
환율 상승과 코스피 상승이라는 아이러니도 다시 보게 됩니다. 과거 일본의 사례를 보면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일본은 잃어버린 10년 동안 엔화 가치가 폭락(환율 급등)했지만, 반대로 닛케이 지수는 엄청나게 상승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우리나라처럼 수출 중심 국가는 환율이 오르면(원화 가치 하락) 수출 기업들의 가격 경쟁력이 높아지고, 해외에서 벌어들인 달러를 원화로 환전할 때 더 많은 이익을 얻게 됩니다.
이것이 기업 실적을 끌어올리고 주가를 부양하는 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물론 환율 상승이 장기화되면 수입 물가가 올라 서민들의 삶은 팍팍해지고 자산 투자를 하지 않는 사람들은 실질 구매력이 떨어져 더 가난해지는 악순환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각자도생의 시각으로 자산을 바라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1997년처럼 공포에 질려 IMF 온다고 패닉에 빠질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정부가 모든 것을 해결해 주길 바라며 손 놓고 있어서도 안 될 것 같습니다.
개인들이 환율을 걱정한다고 해서 바꿀 수 있는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환율 상승이 원화 가치의 하락 때문이라면, 원화만 100% 들고 있는 것은 자산 가치를 스스로 깎아내리는 행위일 수 있습니다.

결국 지금 같은 시기에는 각자 처한 상황에서 자산을 지키고 증식할 방안을 현명하게 고민하는 것이 최선인 듯합니다.
그것이 달러 자산을 확보하는 것(예: 미국 주식 투자)이든, 주식이나 부동산 같은 실물 자산에 투자하는 것이든 말이죠.
나라 빚이 늘어나면 언젠가 우리와 우리 자손들이 세금으로 갚아야 할 짐이 되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당장 시중에 돈이 풀리고 원화 가치가 떨어지는 이 현상을 기회로 보고 생존 전략을 짜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참 아이러니하고 복잡한 시기입니다. 이럴 때일수록 감정적으로 휩쓸리기보다, 냉철하게 상황을 분석하고 나만의 자산 포트폴리오를 점검해봐야합니다.